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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재화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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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지적원도와 비교해 보면 집 터, 길 등은 변형된 것이 없지만, 새 가옥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19년 진주 3·1운동 지도자 김재화가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권채근/강달영/정용길/심두섭/조웅래/박진환
관련 내용 진주 지역의 3·1운동은 김재화(金在華)·심두섭(沈斗燮)·조웅래·박대업 등이 광무황제(고종) 인산에 참례한 후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감추고 귀향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재화는 귀향 즉시 집현면 하촌리 자신의 자택에서 권채근(權采根)·강달영(姜達永)·박진환(朴進煥)·정용길(鄭鎔吉)·심두섭·조웅래·박대업·정용길 등을 불러 만세시위를 위한 비밀회합을 가졌다.

진주의 3·1운동은 3월 18일부터 4일간 진행되었는데, 김재화(1882~1920)는 강달영·권채근 등과 함께 매립지에서 독립선언서와 교유문을 배포하였고, 3월 21일까지 일제 경찰에 피체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주 지역에서의 시위를 모두 지휘할 수있었다. 이 만세시위로 검거된 김재화는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대구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징역 3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1920년 4월 대구감옥에서 고문후유증으로 만 28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부, 「진주군 집현면 하촌리 지적원도」, 1914.
「김재화 등 판결문」, 1919년 6월 1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재화 등 판결문」, 1919년 9월 6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추경화,『 진주항일운동사』, 진주문화원, 2008, 173-181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진주군 집현면 하촌리 222
주소 경남 진주시 하촌동 222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하촌로96번길 68-1
위치 고증 「김재화 등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진주군 집현면 하촌리 지적원도」와 대조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지적원도」에는 해당 지번의 토지 소유자로 김재화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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