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양양 기사문리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기타(교량) |
| 상태 | 변형 / 도로 확장 및 주변 시설물 설치 등으로 인해 일부 변형되었다. |
| 정의 | 한반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38선 경계지역으로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북한군이 자주 도발하여 38선 충돌이 전개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강릉 전투, 대관령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8사단 제10연대, 국군 제3사단, 북한군 제1경비여단, 북한군 제5사단 |
| 관련 인물 | 이성가, 고근홍, 김석원, 김종순, 박종병 |
| 관련 내용 |
기사문리 전투는 북한군의 남침 당일 국군 제8사단 제10연대 제2대대가 수행한 경계진지 전투이다. 기사문리는 한반도에서 가장 동쪽의 38선 경계지역으로, 이곳에서는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양측간에 잦은 무력 충돌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국군 제8사단 제10연대 제2대대가 방어하던 기사문리 일대에는 1950년 6월 24일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경계진지 주변의 시계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6월 25일 새벽 188고지에 고요를 깨고 낙하한 일발의 포격을 신호로 동해안에서 연화동에 이르는 제10연대 제2대대의 38도선 경계진지 일대에는 포탄이 비 오듯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북한군 제1경비여단 주력이 7번 도로상의 기사문리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이 공격으로 국군 제2대대는 경계진지가 돌파당하여 큰 피해를 입었으며 사전에 계획된 대대의 주저항선인 화상천 일대로 철수하였다. 기사문리는 개전 초기에 북한군의 주요 남침로였지만,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작전시에는 국군 제3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넘은 곳이기도 하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 2005, 570-574쪽. 국방군사연구소,『한국전쟁』(상), 1995, 141-14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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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강릉군 현북면 잔교리 |
|---|---|
| 주소 | 강원 양양군 현북면 잔교리 41-10 일대 |
| 도로명 주소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동해대로 1242 일대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2권 570-574쪽에 의하면, 국군 제10연대 제2대대가 6월 25일 기사문리에서 남하한 북한군 제1경비여단과 제5사단 제10연대 병력을 맞아 교전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














기사문리 북쪽 방향
기사문리교에서 바라본 잔교리 지역
기사문리 남쪽 방향
양양 기사문리 38선 경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