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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횡성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옛 횡성군청이 있었던 곳에 횡성군의회가 자리잡고 있으며, 횡성 시장은 옛 장터이다.
정의 1919년 3월 27일과 4월 1일 횡성 장날에 천도교인이 주도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윤태환/정해경/하영현/강사문/최동수
관련 내용 횡성의 만세시위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3월 27일 횡성 장날에 천도교인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으나 주도인물 12명이 검거되면서 끝났다. 다음 장날인 4월 1일 다시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천도교인이 계획을 추진하였지만, 횡성청년회 윤태환(尹泰煥)과 횡성감리교회 정해경(鄭海景)도 참여하였다. 횡성군수가 직접 면사무소에서 폭동에 대비하라는 훈시까지 하는 등 일제 관헌의 대비가 엄중한 가운데 4월 1일 천도교인들은 횡성의 길목을 지키고 상점을 미리 폐쇄하였다. 원주 소초면 둔둔리 천도교인인 하영현(河永賢)과 강사문(姜士文) 등이 주민을 인솔하여 횡성으로 왔다.

4월 1일 횡성 장터에 모인 1,300여 명의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몽둥이·돌·장작으로 문을 닫지 않은 상점, 관공서 앞의 광고판, 군청의 건물 등을 파괴하며 무력시위를 펼쳤다. 그러나 일제 관헌들은 시위에 미리 대비해 관공서의 중요 문서를 숨겼으며 직원들도 오후에 모두 도망쳤다.

시위가 진행되던 중 일본헌병 상등병인 고지마[小島了]가 말을 타고 거리에 나타났다. 군중은 헌병을 보자 격분하였다. 최동수(崔東壽)가 그를 말에서 끌어내려 밟고 때렸다. 이 때 총소리가 울리자 군중의 움직임은 일단 멎었다. 저녁 무렵에 다시 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분견소로 향하였다. 헌병들이 원주로부터 출동한 일제보병의 지원을 받고 뒷산에 매복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군중의 선두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일제의 총격으로 법주리 강승문, 둔둔리의 하영현·강달회 등 5명이 즉사하고, 8명 이상이 부상당하였다. 4월 2일에도 만세시위를 계속 전개하며 검거된 자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제는 4월 2일부터 시위 주도자를 검거하여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가혹한 고문과 태형 등을 당하였다.
참고 문헌 일본육군성,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제29보, 1919, 415쪽.
일본육군성,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제39보, 1919, 488~48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574~57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953~955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읍하리
주소 강원 횡성군 횡성읍 읍하리 279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횡성문화원 사무국장 홍성진씨의 증언을 통해 현 횡성시장이 옛 장터이며, 횡성군의회가 옛 군청 터였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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