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왕광연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건물이 남아있지 않으며 건물 자리는 현재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26일과 28일 송산면사무소와 사강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한 왕광연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홍준옥(洪㻐玉), 홍면옥(洪冕玉), 김명제(金命濟), 문상익(文相翊), 김교창(金敎昌), 김용준(金容俊) |
| 관련 내용 |
왕광연(王光演, 1872∼1951, 일명 왕국신[王國臣])은 1919년 3월 26일과 28일에 일어난 송산면 3·1운동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3월 26일 송산면 사강리 면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사강 장날인 28일에도 홍면옥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왕광연은 송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이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의 총격으로 어깨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갔다. 그리고 홍면옥의 동생 홍준옥과 홍면옥의 장인 김명제, 문상익·김교창·김용준 등과 함께 노구치를 추적하여 그의 머리를 몽둥이로 쳐서 넘어뜨리고 돌을 던져 처단하는 등의 격렬한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었다. 1920년 5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왕광연 소행조서」·「예심종결결정」·「왕국신 신문조서(제2회)」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22, 1995, 46·213∼215·254∼259쪽. 「홍면 등 22인 판결문」, 1920년 5월 3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22, 1971. 화성시·수원대학교 박물관,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 화성시, 2003, 108∼109쪽.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002(임야원도_0034)」,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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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523 |
|---|---|
| 주소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23-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왕광연 소행조서」 및 경성지방법원의 「예심종결결정」, 「홍면 등 22인 판결문」 등에 관련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 조사보고서』(2003)에서 현재 위치를 비정하고 있으며, 문상익의 조카 문광환이 왕광연의 집터를 증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