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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학산경찰주재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상태 멸실 / 서산경찰관주재소는 현재는 학산농협 옆 건물이며, 옛날 농협으로 쓰였다고 한다. 학산면사무소는 현 학산면 복지회관 주변으로 옛날에는 앞에 광장이 있었다고 한다.
정의 1919년 3월 30일과 4월 3일에 학산면과 양산면 면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였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헌주(李憲周)/이기주(李箕周)/이공연(李光然)/양봉식(梁鳳植)/이기영(李璣榮)/전재득(全在得)
관련 내용 1919년 3월 30일 양산면민들은 이웃 학산면 서산리의 서산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영동, 무주간의 도로공사 부역에 나섰던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이 주동자를 체포해 가자 시위 군중들은 구속된 애국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서산경찰관주재소에 돌을 던지고 창문 및 전화기 등을 파괴하였다. 군중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 경찰은 구속된 인사를 석방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군이 출동하여 7명을 다시 체포해 갔다.

이 거사를 주동한 인물들은 청산면 갓골리에서 대대로 살던 인천 이씨들로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문중의 부로들이 연로함을 탄식하고 젊은이들에게 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이헌주·이기주 등의 청·장년들이 거사를 논의하였고, 목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써서 큰길에 세워 만세시위를 전개하려 하였으나,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광연(李光然)이 면민을 격려하여 이웃 학산면으로 몰려가 도로 공사 부역꾼과 합세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인사들을 구출하였다.

4월 3일에는 오후 4시경부터 6시경까지 학산면 서산리 시장에서 약 300명의 군중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서산리 시장을 누비면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날 밤 8시경에는 200여 명의 군중들이 양봉식(梁鳳植)·이기영(李璣榮)·전재득(全在得) 등의 지휘하에 학산면 사무소에 쇄도하여 뽕나무 묘목을 소각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이들은 다시 군중들을 이끌고 서산경찰관주재소에 이르러 주재소와 순사 숙직실의 집기와 비품을 파괴하였다.
참고 문헌 「정해용 판결문」, 1919년 12월 1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양봉식 판결문」, 1919년 7월 1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전재득 판결문」, 1919년 11월 2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기영 판결문」, 1919년 4월 2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1115~1120·1123~1126쪽.
김정명, 『조선독립운동』 Ⅰ, 原書房, 1967, 441·51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92~93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주소 충북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817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 3권과 『조선독립운동』 Ⅰ권, 「정해용 판결문」·「양봉식 판결문」·「전재득 판결문」·「이기영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서산경찰관주재소의 위치는 현지조사에서 김진봉(청주 거주, 76세)의 증언에 통해 현장을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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