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인식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당시에는 매우 큰집으로 인근 뒤편 도로 건너편까지가 부지였으나 현재는 일부가 도로로 편입되었고 남은 대지에는 시멘트 블록공장과 상가가 들어서 있다. |
| 정의 | 3·1운동에 참여힌 뒤 만주에서 군자금모집 활동 등을 전개한 이인식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대한민국임시정부 |
| 관련 인물 | 이필주(李弼柱) |
| 관련 내용 |
이인식(李仁植, 1901~1963)의 호는 춘고(春皐)이며 서울 보성중학교를 거쳐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19년 2월 28일 정동 예배당 구내의 이필주(李弼柱) 목사 집에서 중학생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실행할 것을 계획하였는데 이 때 보성중학교 대표로 참석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파고다공원으로 학생들을 참석하게 하고 선언서를 배포하여 시위운동을 주도하며 미국영사관과의 연락책임을 맡고 활동하였다. 3월 5일 오전 9시 서울역광장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다가 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월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전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로 망명한 뒤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8천원을 헌납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원이 되어 계속 투쟁하였다. 1962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105쪽. 「이인식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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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 453 |
|---|---|
| 주소 | 전북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453-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인식 공적조서」와 『독립운동사』 2권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증손인 이창종(60, 같은 번지 내 거주)의 고증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














이인식 판결문
이인식 동상
이인식 집터(건재사 좌측 안)
위에서 본 이인식 집터
이인식 집터 전면 좌측
이인식 집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