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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단성공립보통학교 앞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단성공립보통학교 앞의 삼거리와 성내리 장터로 가는 길이 확장되었다.
정의 1919년 3월 20일부터 21일까지 산청군 신등면과 단성면 면민들이 단계장터에서 만세시위 후, 단성면으로 이동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호용(李好用)/전용수(全龍壽)/정문수(鄭文秀)
관련 내용 산청군 신등면 단계장터 만세운동과 단성면 성내리장터 만세운동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시위이다. 먼저 신등면 단계장터에서의 만세시위가 1919년 3월 19일 발생하였고 20일 단계장터와 성내리장터, 21일 성내리장터에서 격렬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단성면의 만세시위는 서부경남에서는 가장 치열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시위였다.

단성면의 시위는 성내리장터에서 먼저 시발되었으나, 객사 터인 단성공립보통학교 정면으로 주요 충돌의 장소인 삼거리와 주재소, 장터가 모두 밀집되어 있었으므로, 시위가 전개된 중심공간을 단성공립보통학교 앞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20일 단계장터에서 성내리장터로 옮겨온 시위대와 더불어, 21일은 단성 장날이라 성내리장터에는 더욱 많은 인파가 몰렸다. 11시경 군중은 일제히 만세운동을 벌이면서 이호용(李好用) 등 4~5명의 대표단을 구성하여 단계장터에서 검거된 구금자의 인도를 교섭하였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고, 오후 3시경 헌병과 대치하고 있던 군중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고 함성을 지르면서 경계선을 돌파하였다. 이때 헌병 1명과 보조원 2명이 포위당하여 총신을 파손당하고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분노한 군중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주재소를 향하여 밀고들어갔다. 이에 군중들의 위세에 위협을 느낀 헌병들은 주재소 정문 입구에서 갑자기 군중들을 향하여 발포를 감행하였다. 전용수(全龍壽)·정문수(鄭文秀) 등 태극기를 앞세워 선도하던 만세운동 주도자 수십명이 흉탄에 맞아 쓰러졌으며, 11명이 순국하였다. 이 발포로 인해 군중들은 흩어졌고 주도자는 체포된 채 만세운동이 종결되었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부,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지적원도」, 1914.
「조선오만분일지형도; 단성」, 조선총독부, 1918.
「권숙린 등 2인 판결문」, 1919년 9월 1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선헌병대사령부, 『조선소요사건상황』, 1919, 108쪽.
경상남도경찰부, 『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22쪽.
오주환, 『산청향토사』, 신우, 2005, 463~481쪽.
한국문화원연합회 경상남도지회, 『경남지역 3·1독립운동사』, 2007, 210~215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주소 경남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596-2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목화로961번길 10
위치 고증 「권숙린 등 2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소요사건상황』과 『고등경찰관계적록』 등에도 관련 사실이 짧게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오만분일지형도; 단성」·「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지적원도」와 현재의 지적도를 비교하여 의거 현장의 구체적 지번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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