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양대리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멸실 / 당시 시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시장이 섰던 자리에는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20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입장면 주민들이 3·1운동 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안은(安銀)/한근수(韓根守)/민국석(閔國錫)/한이순(韓二順)/황금순(黃錦順)/박창신(朴昌信)/안시봉/민옥금(閔玉錦) |
| 관련 내용 |
천안 입장 양대리시장에서는 1919년 3월 20일 광명학교 민옥금·한이순·황금순 등과 직산금광 광부 안시봉의 주도로 군중 600∼700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28일에는 박창신이 동료 광부 안은·한근수 등과 함께 직산금광 갱부의 교대 시간을 이용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이어 시장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헌병주재소의 헌병 및 천안철도원호대 수비병과 충돌하였다. 이에 군중들도 주재소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기 위하여 격투를 벌이는 한편 통신을 단절시키기 위해 주재소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의 시위를 전개하였다. 한편, 입장 지역에서는 3월 30일과 4월 8일에도 면민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두 차례의 양대리장터 만세시위로 민옥금 등 8명은 징역 6월에서 1년 2월, 박창신 등 4명은 징역 10월에서 1년 6월의 옥고를 겪었다. |
| 참고 문헌 |
「민옥금 등 8인 판결문」, 1919년 6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박창신 등 4인 판결문」, 1919년 5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1165∼1167쪽. 김진호,『충남지방 3·1운동 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80∼8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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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
|---|---|
| 주소 | 충남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 13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민옥금 등 8인 판결문」과 「박창신 등 4인 판결문」에 입장면 양대리장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입장독립만세운동기념추진위원장 민태일의 고증으로 시장 터를 확인하였다. |














입장 방향으로 본 양대리장터
북면 방향으로 본 양대리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