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아산리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일부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시장의 구조는 유지하고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14일 영인면 면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14 영인면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송옥현/김순의/고원상/문성옥/서광춘/이치덕/유기영/이춘서/맹관득/정석호/서강전/최점옥/한진천/윤선권/홍원유/한금동 |
| 관련 내용 |
영인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4일 아산의 구읍인 아산리시장에서 일어났다. 오후 1시경 약 15명의 군중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부르자 학생과 시장에 있던 군중 130여 명이 합세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들이 출동하여 군중들을 강압적으로 제지하므로 잠시 시위가 진정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오후 6시경 다시 수백 명이 읍 외곽에 집결하여 읍내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신운리 주민인 송옥현(宋玉鉉)·김순의(金順義)·고원상(高元相)·문성옥(文成玉)·서광춘(徐光春)·이치덕(李致德)·유기영(劉基榮)·이춘서(李春瑞)·맹관득(孟寬得) 등과 신화리 주민인 정석호(鄭錫好)·서강선(徐强先)·최점옥(崔占玉)·한진천(韓鎭千)·윤선권(尹先權)·홍원유(洪元裕)·한금동(韓今同) 등은 아산리 시장에 나아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제는 온양읍 온천리헌병분견소에서 헌병 7명을 출동시켜 주모자 9명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체포된 주모자들은 온양헌병분견소에서 태형60도의 악형을 당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회도서관,『한국민족운동사료』 3·1운동편 1, 1977, 41~42·381쪽. 국회도서관,『한국민족운동사료』 3·1운동편 3, 1979, 6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150쪽. 김진호,『충남지방 3·1운동 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3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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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 |
|---|---|
| 주소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389-40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3권 등에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지역주민들의 증언으로 구시장터를 확인하였다. |














온양 방향으로 본 아산리장터
인주 방향으로 본 아산리장터
영인초등학교 주변의 아산리장터(인주 방향)
구 39번 국도변에 있는 아산리 버스정류장과 아산리장터 입구
영인초등학교 주변의 아산리장터(온양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