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기장공립보통학교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초창기의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기장초등학교로 해방 후 신축된 건물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10일 기장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4.5 동래군 기장장터 독립만세시위/1919.4.8 동래군 기장면 기장장터 독립만세시위/1919.4.10 동래군 기장공립보통학교 학생 독립만세시위/1919.4.10 동래군 기장장터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김도엽(金度燁)/김수룡(金壽龍) |
| 관련 내용 |
1919년 4월 5일 김도엽(金度燁)·김수룡(金壽龍) 등의 주도로 기장장날에 기장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었으며, 4월 8일 오후 10시에는 노동자와 부인들이 중심이 된 수백 명의 군중들이 기장장터에 모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이들 모두 군경의 발포로 해산하였다. 4월 10일 오전 9시에 다시 기장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기수룡 등 5인의 주도하에 동교 학생 약 50명이 독립만세를 외치고 교문을 나서 기장읍내를 누비며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주민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시위대에 참가하였고, 특히 이날도 장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여 오후 9시에는 1,000여 명의 군중들이 다시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경찰의 제지를 물리치고 이 시위는 밤새도록 계속되었으나, 11일 새벽 1시경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와 탄압으로 군중들은 부득이 해산하였다. 기장공립보통학교는 1912년 2월 기장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인가 받았고, 1920년대에는 기장여자야학회와 노동야학회의 야학장소로도 사용되었다. 현재 기장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
| 참고 문헌 |
「토지대장」. 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 「機張郡 邑內面 東部洞 地籍原圖」, 1912. 「김도엽 등 9인 판결문」, 1919년 6월 1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남도 경찰부, 『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1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199~201쪽. 기장군지편찬위원회, 『기장군지』, 2001, 293ㆍ314쪽. 공태도, 『남기고 싶은 사진』, 기장향토문화연구소, 2008, 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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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 320 |
|---|---|
| 주소 | 부산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320 |
| 도로명 주소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읍내로 69 |
| 위치 고증 | 『고등경찰관계적록』 및 『독립운동사』 3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기장군 읍내리 동부리 지적원도」를 통해 기장공립보통학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으며, 「토지대장」을 통해서도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 320번지가 학교 자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기장객사(기장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사용)
기장공립보통학교 - 현 기장초등학교 우측면
기장공립보통학교(현 기장초등학교)
기장공립보통학교 - 현 기장초등학교 운동장
기장공립보통학교 - 현 기장초등학교 정면과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