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낙안읍성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복원 / 낙안읍성은 원형을 유지한 상태로 복원되어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13일 순천군 낙안면 주민들이 독립난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4.13 순천군 낙안읍성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유흥주(劉興柱)/김종주(金鍾胄)/김선제(金善濟)/박태문(朴太文)/배윤주(裵潤柱)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 소식을 전해들은 순천군 낙안면 출신의 유흥주(劉興柱)와 김종주(金鍾胄) 등은 4월 13일 낙안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의하고 각자의 집에서 태극기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낙안읍성 서문(西門)에서 성안으로 행진하며 '대한독립기'와 '조선독립기'라고 쓰여진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에 모여든 군중들의 호응을 유도하였다. 이들은 시위 군중들을 규합한 후 만세를 부르며 서문 안으로 들어가던 중 헌병이 무력으로 저지하자 충돌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종주와 그 아들 김선제(金善濟) 등은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자상을 입는 등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시위 주도자들은 체포되었다. 이때 체포된 유흥주와 김종주는 징역 1년 6월, 박태문(朴太文)·김선제·배윤주(裵潤柱) 등은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현재 낙안읍성 동문 밖에 '3·1운동기념탑'이 건립되어 있다. |
| 참고 문헌 |
「유흥주 등 6인 판결문」, 1919년 5월 2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선제 판결문」, 1919년 10월 1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 독립문화사, 1971, 327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594~596쪽. 순천문화원, 『순천승주향토지』, 1975, 72쪽. 순천시사편찬위원회, 『순천시사』, 1997, 595~598쪽. 홍영기, 「벌교의 3·1운동」, 『벌교100년』, 벌교읍지편찬위원회, 2007, 43~5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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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순천군 낙안면 서내리 |
|---|---|
| 주소 |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내리리·서내리·남내리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유흥주 등 6인 판결문」 및 「김선제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까지 낙안읍성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어 그 위치를 비정하였다. |














김선제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년 10월 10일)
유흥주 외 판결문(광주지법 순천지청, 1919년 5월 29일)
낙안읍성 서문 전경(안→밖)
3·1독립운동기념탑
낙안읍성 서문 전경(밖→안)
낙안읍성 서문 주변 길(시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