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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영재 - 월계리 3·1운동 발상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복원 / 1943년 태풍으로 무너졌는데 2005년 복원하였다.
정의 1919년 4월 8일 함평군 월야면 문장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던 한문서당인 낙영재가 있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8 함평군 월야면 문장장터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기택(金箕澤)/정용섭(鄭龍燮)/정재남(鄭在南)/이인행(李仁行)/이윤상(李潤相)/장효섭(張孝燮)/장영안(張永安)/모재명(牟才明)/김여옥(金汝玉)/이양범(李陽範)/이상준(李相俊)/장덕환(張德煥)/장태중(張太仲)/이계동(李啓東)/김용현(金龍鉉)/김재곤(金在崑)/최준달(崔俊達)/모양춘(牟陽春)/민정태(閔鼎泰)/이인덕(李仁德)/김원춘(金源春)/윤의병(尹誼炳)/김중수(金仲洙)
관련 내용 1919년 4월 8일 오후 5시경 함평군 월야면 월계리 문장장터에서 김기택(金箕澤)·정용섭(鄭龍燮)·정재남(鄭在南) 등이 태극기를 들고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벌이자 많은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여 장터는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시위군중들은 문장리에 있던 헌병분견소를 기습하였으며, 군중들 일부는 각각 함평, 영광, 송정리 등지로 나누어 행진하였다. 그러자 영광·함평·장성·나주 등지에서 지원 나온 일본 경찰대와 헌병들이 총검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고 구밀교 공사를 하던 일본인 잡역부 10여명이 쇠망치를 휘두르며 거리를 피로 물들게 하였다. 문장장터에서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이인행(李仁行)·이윤상(李潤相)·김기택·장효섭(張孝燮)·정재남·정용섭·장영안(張永安)·모재명(牟才明)·김여옥(金汝玉)·이양범(李陽範)·이상준(李相俊)·장덕환(張德煥)·장태중(張太仲)·이계동(李啓東)·김용현(金龍鉉)·김재곤(金在崑)·최준달(崔俊達)·모양춘(牟陽春)·민정태(閔鼎泰)·이인덕(李仁德)·김원춘(金源春)·윤의병(尹誼炳) 등이었다.

이들은 1917년 김중수(金仲洙, 일명 金準泳, 호 石泉)가 설립한 한문서당인 낙영재(樂潁齎)에서 만세시위을 계획한 후 이를 실행하였다. 낙영재는 1943년 태풍으로 무너진 것을 2005년 복원하였다.
참고 문헌 「김기택 등 2인 판결문」, 1919년 6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604쪽.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전라남도지』 8, 전라남도, 1993, 114쪽.
함평군사편찬위원회, 『함평군사』 1, 함평군, 1999, 1072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월계리
주소 전남 함평군 월야면 월계리 산 35-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기택 등 2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낙영재 앞 안내판을 통해 월계리 3·1만세운동 발상지임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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