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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계양면 황어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황어장터 3·1 만세운동기념관 및 기념탑이 있어 만세운동과 관련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정의 1919년 3월 24일 부평군 황어장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황어장터 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심혁성(沈爀誠)/임성춘(林聖春)/최성옥(崔成玉)/이담(李墰)/전원순(全元順)/이공구(李公雨)
관련 내용 황어장은 부평군의 대표적인 장(3, 8일장)으로 1910년대에는 하루 1,000여 명이 운집하는 장이었다. 원래는 잉어를 매매하는 장이 섰던 곳이었으나 일제시기에는 주로 소가 평균 200여 마리씩 거래되었다.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쯤 심혁성이 주도하는 가운데 300여 명이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만세시위 중 심혁성이 주재소 경찰 4명에 의해 면사무소로 끌려가자 군중은 심혁성의 석방을 요구하며 심혁성을 풀어주었고, 그 와중에 이은선이 일경이 휘두른 칼에 찔려 사망하였다. 이에 분노한 이담을 비롯한 전원순·최성옥·이금산 등 시위대는 면사무소를 에워싸고 밤새 시위를 하였다. 다음날 인천경찰서에서 무장 경찰이 출동하여 총검으로 압박하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심혁성은 징역 8월, 이담 징역 2년, 임성춘 1년, 최성옥과 전원순 징역 10월, 이공우 벌금 20원의 형벌을 받았다. 황어장터 만세운동은 이후 인천지역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참고 문헌 「심혁성 등 6인 판결문」, 1919년 10월 2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외,『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316~322쪽.
인천광역시사편찬위원회,『인천광역시사』, 인천광역시, 2002, 657쪽.
박환,「인천 황어장터 3·1운동의 전개와 역사적 의의」,『한국민족운동사연구』46,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6, 25~47쪽.
『매일신보』, 1919년 3월 27일,「소요사건의 後報, 부평: 면소를 파괴하고 사상자를 내었다.」.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
주소 인천 계양구 장기동 139-3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자료집』5에 황어장터 만세시위 판결문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황어장이 섰던 곳에는 현재 3·1 만세운동기념관이 있어 당시의 상황과 기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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