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쌍산의소 훈련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산야
상태 훼손 / 의병성과 막사터는 증동 동편의 계당산 기슭에 구축되어 있는데, 현재 빈 터로 의병성과 막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흔적만 여기저기 남아 있다. 의병성은 돌담 모양의 석축열이 높이 80㎝ 내외로 길게 쌓여 있으며 그 내부에는 원형 또는 방형의 낮은 돌담들이 불규칙하게 늘어선 막사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정의 쌍산의소 의병의 훈련지로 막사와 방어시설인 의병성이 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07 중기의병
관련 조직 쌍산의소(雙山義所) 
관련 인물 양회일(梁會一)/임노복(林魯福)/안찬재(安贊在)/신재의(辛在義)/이광선(李光善)/임상영(林相永)/임창모(林昌模)
관련 내용 쌍산의소는 의병들이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훈련하던 곳으로 그와 관련된 다양한 유적이 원형을 거의 간직한 채 남아 있기 때문에 한말 호남의병은 물론 한말의병사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쌍산의소'란 명칭은 오래 전부터 현지 주민들이 계당산 일대를 가리켜 '쌍산' 또는 '쌍봉(雙峰), '쌍치(雙峙)'라고 불러온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쌍산의소는 양회일이 가산을 기울여 결성한 것으로 능주와 화순을 점령하며 의병의 기세를 올렸다.

양회일(梁會一, 1856~1908)은 증동마을의 임노복 등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천연적인 요새나 다름없는 증동마을 뒷산에 의병의 막사지 등을 조성하고, 의병에 가담하기 위해 몰려든 장정 수백명을 이곳에서 훈련시켰다. 훈련을 하며 주둔하고 있던 쌍산의소 의병들은 양회일을 중심으로 1907년 4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며칠 뒤 판치에서 관군에 패해 의병장 양회일 이하 6명이 유배형을 받았다가 1907년 12월에 석방되었다.
참고 문헌 양회일, 『행사실기』, 1950.
『구한국관보』제3815호, 1907년 7월 11일.
『구한국관보』제3939호, 1907년 12월 3일.
조동걸, 「쌍싼의소의 의병성과 무기제조소 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4, 한국
독립운동사연구소, 1990, 41-57쪽.
『화순 쌍산의소와 5대산성 학술조사 보고서』, 전남대학교박물관, 1998, 46-57쪽.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 일조각, 2004, 185-221쪽.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능주군 도림면 증동
주소 전남 화순군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행사실기』에 관련 사실이 명기되어 있고, 조동걸의 논문「쌍산의소의 의병성과 무기제조소 유지」에서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3123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1  전화: 041-560-0405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21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