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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화천 파로호 전투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가수호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재반격작전
종류 산야
상태 원형보존 /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정의 1951년 5월 24일부터 28일까지 국군 제6사단과 미 제7사단, 그리고 유엔 공군이 철수하는 중공군을 공격해 6·25전쟁 기간 중 가장 큰 전과를 올린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중공군 제5차 공세, 용문산 전투
관련 조직 국군 제6사단, 미 제9군단, 미 제7사단, 중공군 제63군, 제12군, 제15군, 제60군 
관련 인물 장도영, 송대후, 양중호, 임익순, 호지(William M. Hoge)
관련 내용 파로호 전투는 1951년 5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 제9군단 예하의 국군 제6사단과 미 제7사단, 그리고 미 공군이 참가해 지리멸렬하여 쫓기는 중공군을 공격, 6·25전쟁사에서 가장 큰 전과를 올린 전투이다.

1951년 중공군의 5월 공세가 절정에 도달한 5월 19일 전선을 시찰한 유엔군사령관은 중동부지역의 공산군의 전선이 과도하게 돌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였다. 이에 그는 미 제8군에 전 전선에 걸친 대규모 공격작전을 전개하도록 명령하였다. 중부전선의 미 제9군단은 5월 20일 화천 점령을 목표로 국군 제2사단, 미 제24사단, 미 제7사단, 국군 제6사단을 공격작전에 투입하였다. 군단은 25일 대규모의 중공군이 화천저수지 남쪽을 지나 화천으로 이동 중이라는 항공정찰보고를 받았다. 군단은 즉시 다음날 미 제24사단의 제21연대, 미 제7사단의 제17연대, 국군 제6사단의 제19연대로 삼각형의 포위망을 형성하였다. 중공군은 아군의 포위망 속에 갖힌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유엔공군의 맹폭격과 아군 지상부대들의 섬멸전으로 인해 대부분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섬멸되었다.

5월 28일까지 진행된 이 전투에서 아군은 중공군 62,000명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낭보를 접한 이승만 대통령은 이 작전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구만리저수지(화천저수지)를‘오랑캐를 대파한 호수’라는 뜻으로‘파로호(破虜湖)’라고 고쳐 부르게 하였다.
참고 문헌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6, 605-610쪽.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8, 2011, 248-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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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주소 강원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산 62-2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한국전쟁』중권 605-610쪽에 의하면, 항공지원을 받는 국군과 미군의 연합작전으로 중공군 약 3만명을 파로호에 수장시켰음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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