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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제암리교회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제암리교회가 있던 자리에는 1983년에 세워진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2001년에 들어서 기념관을 짓는 등 성역화되었다.
정의 수원군 장안면·우정면 지역과 발안장터에서의 만세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1919년 4월 15일 일본군과 경찰이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 주민을 학살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3.25 수원군 제암리 독립만세시위/1919.3.31 수원군 발안장터 독립만세시위/1919.4.1 수원군 진례산 독립만세시위 1919.4.15/수원군 제암리교회 학살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안종린(安政麟)/안정옥(安政玉)
관련 내용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의 안종린·안정옥 등은 독립선언문과 격문을 입수하여 3월 25일 제암리 주민들과 뒷산에 올라가서 봉화를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31일에는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수촌리·고주리 주민들과 함께 경찰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4월 1일에는 진례산에 올라가 만세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수원군 향남면에서의 시위가 격화되자 4월 15일 오후 일본군 제20사단 보병 79연대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인솔하는 일본군 수비대 약 20명은 발안리를 출발하여 제암리를 포위하였다. 그리고 제암리 거주 조선인 남자들을 예배당으로 모이게 한 뒤 예배당 출입구와 창문을 모두 막고 총격을 가하고, 교회에 불을 질러 학살을 자행했다. 또한 마을의 33채 가옥 중 외딴집 2채만을 남기고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일제는 이외에도 고주리·수촌리 등 장안면·우정면 지역 20여 마을을 포위하고, 시위주도자를 검거하는 한편, 주민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제암리의 참상은 일제에 의해 불타버린 수촌교회를 시찰하기 위해 이 지역을 들렀던 언더우드 (H.H.Underwood) 선교사 일행에 의해 외부로 알려졌다. 주민 학살에 대한 세계의 여론이 비등하자 일제는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시늉만 하다 이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제암리교회는 1905년에 지어져, 1919년 불탄 후 1938년 원래 자리에 다시 지어졌다. 1970년 중건하였으며, 1983년 23인 유해를 발굴하여 교회 뒤에 묘역을 조성하였다. 2001년 제암리 3·1운동기념관 건립과 함께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참고 문헌 『매일신보』, 1919년 4월 17일, 「참학한 폭동의 진상, 수원지방 폭동의 자세한 소식」.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4, 1971, 613~615쪽.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50보)」, 1919년 4월 17일 ;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7)』,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화성시사편찬위원회,『화성시사』Ⅰ, 화성시, 2005, 564~569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
주소 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322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자료집』4권의「한국의 진상(2)」 및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7권의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50보)」(1919.4.17)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제암교회 연혁 등을 통해 현재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탑 자리가 제암리교회 자리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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