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원군 별장 아소정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동도중학교·서울디자인고등학교 교정이 들어서 있다.
정의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 당시 흥선대원군이 거처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895 을미사변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명성왕후(明聖王后)/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준용(李埈鎔)
관련 내용 아소정(我笑亭)은 마포 공덕리에 위치한 흥선대원군의 별장이다. 대원군이 이곳에서 사실상의 연금생활에 들어간 것은 1895년 4월 손자 이준용이 고종폐위 음모에 연루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를 떠나면서였다. 그에 앞서 대원군은 1894년 7월 고종을 대신하는 ‘섭정’이 되어 갑오개혁 정권에 참여했다가, 그 해 11월 이노우에[井上] 일본공사의 축출공작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아소정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대원군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1895년 10월 명성왕후 시해사건 과정에서였다. 명성왕후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 미우라[三浦] 일본공사 일당은 명성왕후의 정적인 대원군을 끌어들이기로 하고 갖은 회유와 협박으로 반승낙을 얻어내었다. 그리고 10월 8일 새벽 마포 공덕리 아소정으로 일본군 수비대 제1중대를 보내 대원군을 호위하고 경복궁으로 향하게 하였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들러리를 선 대원군은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정국이 다시 바뀌면서 양주 곧은골로 은거하였다. 1898년 2월 79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고, 부대부인 민씨가 묻힌 아소정 부지에 함께 안장되었다가, 1908년 경기도 파주로 이장되었다. 이후 아소정 일대는 대원군의 묘소와 사당이 있다고 해서 국태공원(國太公園)이라 불렸다. 아소정 별장 건물은 해방 후 동도중·고가 들어서면서 1966년 서대문구 봉원동에 있는 봉원사에 이전 복원되어 현재 대방(大房: 염불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 문헌 「경성도」(1924);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49쪽.
『고종시대사』3, 1895년 8월 20일조, 국사편찬위원회, 1969, 988∼989쪽.
高陽 一記者, 「경기의 수도이오 경성의 번병(10): 순회탐방(220) 점차 도시화하는 고양」, 『동아일보』, 1927년 2월 7일자.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고양군 용강면 공덕리
주소 서울 마포구 공덕동 염리동 150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 139
위치 고증 「경성도」(1924)에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이준공(李埈公) 별저(아소정)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3123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1  전화: 041-560-0405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21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