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본문영역

  • 도입
  • 역사적 배경
  • 읽기
  • 시각자료
  • 모둠활동

주요사적지 배움터

일제 침략 최후의 현장, 제주 알뜨르 비행장

도입

" 18살 때인 1942년에 동리 주민 30여 명과 함께 알뜨르로 동원된 후, 알오름 굴 파는 작업에 3년 동안 투입됐다.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대부분 제주도 주민들이었고 너비는 한 칸(8), 높이는 3~4m 정도인데, 굴착에는 곡괭이를 주로 이용했고, 천정은 나무사다리위에 올라가 작업

 

위의 증언은 알뜨르 비행장 건설 후 해군비행장 지하진지 건설에 동원되었던 오형승씨의 증언이다.
알뜨르 비행장은 처음 중·일전쟁에 대비하여 중국 공격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 하에 1926년에 구상되었다. 그 후 1차 공사(1931-1935년)로 1,400m×70m의 활주로가 규모 약 18만평으로 완성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사적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결국 중국 난징 및 상하이를 공격하기 위해 나가사키 현의 오무라 항공기지를 알뜨르 비행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오무라 해군항공대 등의 주둔으로 알뜨르 비행장의 규모는 2차 공사(1937-1938년)를 통해 40만 평으로 확장되었다. 제주도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난징 공습은 36회, 연 600기, 투하폭탄 총 300톤에 달하였다. 그러나 1938년 11월에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오무라 항공대가 상하이 인근으로 옮겨졌고, 제주도 항공기지인 알뜨르 비행장은 일시적으로 오무라 해군항공대 연습비행장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상륙 가능성이 가장 많았던 이곳은 해안 전지거점 지역으로 진지화되었다.
1944년 10월 3차 공사로 비행장 규모는 66만 7천 평으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 모슬봉에 레이더기지를 설치하는 한편, 미군 공격으로부터 사람과 물자를 보호하기 위한 항공기지 지하 격납을 시작하였다. 전투사령실, 격납고, 프로펠러 조정장, 발동기 정비장, 계기 시험장, 연료고, 통신실, 섯알오름 탄약고 등의 지하시설을 마련하였다. 나아가 미군의 상륙에 대비한 사령부 등 군사 주요시설의 지하수용을 목적으로 하는 갱도 진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역사적 배경

배경
현재 주소
현재 상태

제주도가 전략상 각광을 받은 것은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당시 일본 해군은 중국 난징에 해양폭격을 개시하였다. 이 때 나가사키현의 오무라 항공기지에서 출격하여 제주도 항공기지로 돌아왔다. 이 후 난징, 상하이 등지의 해양폭격의 거점은 제주도로 옮겨지고, 제주도 항공기지에는 오무라 해군항공부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제주도 항공기지는 오무라비행장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동시에 제주도 항공기지를 40만평으로 확대하는 제2차 확충공사도 시작되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오무라해군항공대가 중국으로 본부를 옮기면서 제주도 항공기지는 오무라해군항공대의 연습비행장으로 활용되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일본군이 우세하였으나,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이후 전세는 일본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1944년 5월경 일본 상공에 미군의 B-29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는 일본 본토가 공습권역에 들어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제주도가 군사작전상 중요한 기지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미군에 의해 필리핀에 이어 1945년 2월 이오섬이 점령되면서 오키나와와 규슈 지방 등 일본 본토에 대한 상륙가능성이 높아졌다.
1945년 2월 9일 일본은 미군 공격으로부터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작전, 즉 암호명 “결호작전”을 준비하였다. 1호부터 7호까지 있는 결호작전은 대부분 일본 영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지정학적으로 미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높았던 제주도가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결7호작전”의 대상이 되었다.
“결7호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1945년 4월 15일 0시를 기해 관련 부대들이 제주도로 속속 진입하고, “결7호작전”구상에 따른 부대배치와 진지구축 작업 등이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제주도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7만 5,000여 명에 달하게 되었다. 이들은 제주도 전역에 배치되어 요새구축 등 미군과의 일전을 준비했다. 가마오름 일본군 동굴진지, 송악산 해안 일본군 동굴진지 등 제주도의 오름과 해안 100여개 소에 각종 진지를 포함한 요새들이 집단적으로 구축되었다. 또 대정읍 모슬포 알뜨르에 해군비행장을 확장하고 제주시 정뜨르에 육군서비행장을 새로 건설하였다.

페이지 상단으로 가기

읽기

읽기자료 1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도 내 비행장은 해군의 대정읍 모슬포 알뜨르의 해군항공기지(알뜨르비행장), 육군의 제주시 용담동의 육군서비행장(정뜨르비행장), 조천읍의 육군동비행장(진드르비행장),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건설된 교래리비행장 등 4개소가 있었다. 이 가운데 정뜨르비행장은 현재 제주국제공항으로 이용되고 있고, 교래리비행장은 대한항공 비행훈련원의 정석비행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진드르비행장은 제주시와 조천읍을 잇는 간선도로로 바뀌었다. 이 세군데 비행장은 모두 과거의 흔적을 찾기 힘들만큼 변형되어 있다.
그러나 알뜨르비행장은 국방부 소유지로 현재 공군의 비상활주로로 이용되고 있어 개발이 제한되어 당시의 시설이 가장 풍부하게 원형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이 비행장은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 남부를 폭격하기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1944년 상반기까지는 오무라해군항공대 소속인 연습비행대와 진해경비부 소속인 잠수함공격기가 약간 있었고 고각포 4문과 고사기관포 6문이 배치되었을 뿐 지상 경비 병력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44년 10월 이후 미군의 공습가능성이 커지자 모슬포 레이더 기지를 시작으로 확장 공사를 실시하였다. 이 공사에 동원된 제주도민들은 비행장 활주로 및 부대시설 공사, 격납고 엄체작업, 군수품과 식량 저장 등의 작업에 투입되었다. 또 아버지 대신 나온 어린이들로 부대를 편성하여 잔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다.
이 때 구축된 군사시설 가운데 현재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행기를 감춰뒀던 엄체호이다. 엄체호는 20기가 있었는데, 19기는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고, 나머지 1기는 콘크리트가 해체되어 잔해만 남은 상태이다. 모두 근처 바닷가에서 가져온 잔자갈과 모래, 시멘트, 철근 등을 혼합한 콘크리트로 위를 덮은 유개 엄체호이다. 그리고 위에는 미군의 공습이나 폭격으로부터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흙을 쌓아 위장했다. 활주로 옆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인 지하벙커가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다. 지하벙커는 외부에서는 낮은 언덕처럼 보이도록 위장하였다. 내부벽면에는 사각형 홈이 여러 개 있으며,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안쪽에 관측용 통로가 위를 향해 나있다.
그밖에 고사포진지 3기, 탄약고 1기, 청사 2채, 사관숙소 2채, 병사 숙소 17채, 공장, 창고, 병원막사, 지하벙커 등 대규모로 시설이 들어섰지만, 현재 이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 질문1 일본군이 제주도에 건설하였던 4개의 비행장이 현재 어떤 상태로 관리, 활용되고 있나요?
  • 질문2 알뜨르비행장의 건설 초기의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 질문3 1944년 이후 알뜨르비행장의 유지 목적은 어떻게 변했나요?
  • 질문4 일본군은 1944년 이후 알뜨르비행장의 시설을 어떤 방법을 통하여 확장해 갔나요?
  • 질문5 알뜨르비행장이 다른 비행장에 비하여 비교적 잘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읽기자료 2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전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1945년 들어 해안가에 자살 특공 기지를 건설하였다. 해군의 자살특공대는 미군 상륙용 선단이 상륙지점으로 상륙을 시작하기 전에 선박을 공격, 침몰 또는 파손시키는 임무를 목적으로 편성된 부대이다. 일제가 제주도 해안에 만든 특공기지는 모슬포 송악산을 비롯하여 북촌 서우봉, 서귀포 삼매봉, 성산 일출봉과 고산 수월봉 해안가 모두 5곳이었다. 교룡, 해룡, 회천, 진양 등 사람이 타고 조종하여 적함에 부딪혀서 자폭케 하는  특공병기를 제주도에 배치하려고 하였다.
이 가운데 회천대의 기지는 송악산과 서우봉에 구축되었으나 실제 부대가 배치되지는 않았다. 모슬포 송악산 바닷가 쪽에는 17개의 카이텐〔回天〕이라는 특공정을 위한 갱도를 팠다.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 구축을 위해 제주도민들과 전라도에서 온 민간인들이 동원되었는데, 기술자로 동원된 사람들은 기계로 굴을 팠으며 단순 노무자들은 ‘도로코’를 이용해 굴착과정에서 나오는 흙을 운반했다.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의 총 길이는 414.24m이다. 동굴진지 형태는 一자형, H자형, ㄷ자형 등으로 되어 있으며, 송악산 해안 절벽을 따라 17기가 만들어졌다. 종류별로는 격납고용도 등 특공기지 관련으로 구축된 동굴진지 13곳과 벙커 2곳, 관측용으로 구축된 동굴진지 1곳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유도로 시설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1곳 구축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북 방향에서 남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구축되었으며, 개구부는 대부분 동쪽을 향하고 있다.
한편 제주도 서남부 지역은 미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높은 주요 군사거점으로 상정되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이 지역을 매우 중요시하여 다양한 군사시설을 집중시켰다. 특히 안덕면의 군산에서 월라봉, 산방산, 송악산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오름마다 대규모 지하호를 파놓았다. 제주도 내 지하호가 구축되어 있는 오름은 150여 개로 추정되고 있다. 이 오름들은 주위를 충분히 살필 수 있는 고지대로 지휘소나 관측소가 자리를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름을 중심으로 주변의 넓은 개활지에 숙영지를 설치하고, 훈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름의 기지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가마오름의 동굴기지이다. 일본군 기밀전보문과 미군정보고서, 증언 등을 종합하면, 가마오름에는 일본군 제111사단 제244연대 본부 및 주력, 독립야포병 제6연대, 전차 제12연대 제14중대 일부 병력 등이 주둔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대본부 주둔지는 가마오름 기슭의 옛 절터로 추정된다. 가마오름에서는 미군기를 향해 포사격을 하기도 했으며, 분대·소대훈련, 총검술 등 매일 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가마오름 정상에는 통신소가 있었다.
가마오름 동굴진지는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총 길이가 약 2,000m, 출입구 33곳을 만들었다. 수직으로 뚫려 있는 지하 3층 이상의 미로형 구조이며, 모슬포 또는 고산에 상륙하는 미군을 겨냥한 기동부대가 주둔했다. 높이 1.6-3m, 너비 1.5-3m 규모로 연결돼 있는 땅굴 내부에는 당시 사령관실로 사용했던 10평 남짓한 방과 회의실·숙소·의무실 등으로 추정되는 용도의 다양한 공간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이외에도 여러 기지가 있었으나 8월 15일 전쟁이 끝나자 지하호를 비롯한 일체의 군사시설 구축작업은 중단되었다. 지금도 가는 곳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지하호가 많고, 파다 만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 질문1 일제가 제주도 서남부 지역의 오름에 특공기지를 설치한 목적은 무엇인가요?
  • 질문2 일본군이 제주도에 해안에 만든 특공기지의 위치 다섯 곳을 써 봅시다.
  • 질문3 가마오름 동굴진지의 현황에 대하여 정리하여 써 봅시다.
페이지 상단으로 가기

시각자료

시각자료 1

위의 사진은 알뜨르 비행장의 엄체호이다.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만들어져 중국 폭격에 사용되었으며 이후 연습부대 등이 주둔하였다. 1944년 후반기 이후에는 미군의 상륙을 대비하기 위한 공사를 시행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 질문1 1944년 이후 알뜨르비행장을 확장하기 위하여 동원된 제주도민들이 작업에 대하여 발표해보자.
  • 질문2 위의 엄체호에 대하여 설명하여 보자.

시각자료 2

사진은 송악산 해안 동굴 기지 모습이다. 이 기지는 미군의 상륙 저지 임무를 맡은 일본 해군 자살특공대 기지이다. 이 주변에는 모두 5개의 해안 동굴 기지가 조성되어 있다.

  • 질문1 ‘6. 읽기 2) 일본군 동굴진지’를 참고하여 동굴기지의 개수 및 형태 등 현황을 정리하여 써 봅시다.
  • 질문2 송악산 해안 동굴 기지는 어떠한 방법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시각자료 3

사진들은 가마오름 일본군 동굴진지 내부의 사진이다.

  • 질문1 일본군이 해당 지역에서 가장 높은 오름의 지하에 기지를 세운 까닭은 무엇인가요?
  • 질문2 일본군은 가마오름 일본군 동굴진지를 어떤 방법을 통하여 만들었나요?
페이지 상단으로 가기

모둠활동

모둠활동 1
1945년 2월 미군에 의해 점령된 이오섬에서는 일본군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인까지 전원 옥쇄를 당하였다. 이러한 기본 전략은 제주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만약 일제가 8월 15일에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제주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둠별로 토론하여 발표해 봅시다.
모둠활동 2
일본은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 징병과 징용에 대해서도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모둠별로 제주도 비행장, 해안 특공기지와 오름 동굴 진지를 만드는데 강제 동원됐던 주민의 입장에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문제해결을 위한 항의서를 작성하여 발표해 봅시다.
페이지 상단으로 가기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3123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1  전화: 041-560-0405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21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