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해산과 의병 항쟁

군대해산은 의병항쟁의 불길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전국 각지에서 고립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해왔던 의병들은 해산군인들의 항쟁을 통해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또한 해산군인들의 투쟁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투쟁방안을 모색하고 전투력과 조직력을 보강해 갔다. 무엇보다 먼저 이들은 각기 고립적으로 투쟁해왔던 방법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졌다. 비록 주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진들과 연합투쟁을 전개하거나 연합을 시도한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이때부터는 도(道)의 경계를 넘어서서 의진 간의 연합이나, 연계하는 투쟁전략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관동창의군의 결성

정미의병 시기 중부이북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부대끼리 도(道) 간 경계를 넘어서는 연락체계 구축을 바탕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대표적인 의병부대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갖춘 13도창의대진소로 결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구상은 강원도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은찬과 이구채 혹은 이구재에 의해 처음 시도되었다. 이들 두 사람은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다가 1907년 음력 7월 25일 경북 문경에서 은거 중이던 이인영을 찾아갔다.
이인영은 처음에는 부친의 간병을 이유로 거절하였으나 이들의 간절한 요청과 거병의 당위성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병장 추대를 수락하였다. 이인영은 문경에서 원주로 이동하여 의병원수부를 설치하고 이인영이 원수, 이은찬은 중군을 맡았다. 강원도 원주는 전기의병 당시 이인영 의병부대가 활동했던 지역인데다 이은찬의 출신지이자 활동근거지였다. 또한 원주진위대 특무정교 민긍호가 진위대의 해산을 거부하고 의병으로 전환하여 활동 중이었다. 이인영은 관동창의대장을 표방하고 의병을 모집하고 전국에 의병 봉기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어 관동창의군의 규모를 확대하고 군대 조직을 갖추었다.
이인영 등은 일제의 침략을 물리치고 친일대신을 타도하여 새로운 내각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각국의 영사들에게 일본의 국제법 위반을 호소하였으며 전국 각지에도 격문을 보내 연합의진의 결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서울진공작전 이전의 의병 활동

연합의진은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하기 이전부터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전투가 1907년 11월의 경기도 삼산전투와 마전전투이다. 연합의진은 원주에서 지평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병부대가 합류하여 약 5천명 규모로 증가하였다. 이들은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군수품과 군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는데, 이를 눈치 챈 일제는 원주와 서울에 주둔중인 일본군을 동원하여 이들과 이틀 동안이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삼산전투는 치열하였고 연합의병 측에서는 200~300명이나 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마전전투 역시 같은 시기에 발생하였다. 의병 1천 여 명은 마전읍을 포위하고 일본 군경을 공격하였다. 의병들은 일본 군경과의 격전에서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투를 통해 전술을 발전시켰고 화력을 보완해갈 수 있었다. 특히 관동창의군은 그러한 상황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이인영은 양주로 집결하면서 병력의 보강 및 전투력 향상 그리고 군수품 확보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13도창의대진소의 결성

전국적 규모의 연합의진을 좀 더 쉽게 결성하기 위해 이인영 등은 원주에서 경기도 지평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지평에서 약 2개월 간 주둔하며 일본군과 수차례의 전투를 벌이는 한편 서울을 공격하기 위한 군사력 보강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전국 각지에서 16개 의진이 합세하였고 약 8천명의 연합의진이 형성될 수 있었다. 그해 11월 연합의진은 홍천과 춘천을 거쳐 양주로 이동하였다. 이때 의병장 허위를 비롯한 각지의 의병부대들이 양주로 집결함으로써 48개 의진 약 1만 명의 의병부대가 조직되었다.
당시 이인영은 “용병(用兵)의 요결은 고독을 피하고 일치단결하는데 있은 즉, 각 도 의병을 통일하여 둑을 무너뜨리는 기세를 이루어 근기 지방으로 쳐들어가면 천하는 우리의 것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한국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유리할 것이다.”라는 통문을 전국에 보내어 의병부대의 연합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13도창의대진소 대장으로 추대된 이인영은 진명(陣名)을 정하고 각도 의병의 칭호를 부여하는 등 전국적인 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다시 말해서 전국의 의병조직을 포괄하는 연합의진이 결성된 것이다. 1908년 1월경에는 13도창의대진소의 연합의병 편제를 재정비하였다. 13도창의대진소는 강원도를 기반으로 하는 이인영 계열의 민긍호, 이은찬, 이구채, 방인관, 정봉준 등의 관동의진과 경기도와 황해도를 무대로 활동한 허위 계열의 박정빈, 김준수, 연기우 등의 의병부대, 그리고 충청도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강년 의병부대 등이 핵심적인 전력을 구성하였다. 13도창의대진소는 강원도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부지방의 연합의병부대였지만 전국적인 연합의병부대라는 의미의 ‘13도창의대진소’를 표방한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3도창의대진소의 규모는 약 1만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양총을 가진 해산군인들이나 기타 포군 등이 약 3천 명이었다.

서울진공작전

13도 연합의진은 서울 공략을 목표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이들은 11월부터 서울로 진격하여 동대문 밖 30리에서 일본군과 싸워 후퇴하였던 1908년 2월 초순까지 서울 근교를 무대로 두드러진 활약을 벌였다.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은 동대문 밖에서 전군이 집결하여 서울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통감부를 격파한 후 을사조약을 철회시킨 다음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13도창의군의 본진은 천천히 서울을 향해 진격하고, 군사장 허위는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하였으나 후발 의병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격전 끝에 퇴각하게 되었다. 전국에서 의병부대들이 집결하다보니 상호 간의 연락이나 연합활동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상을 당하면서 서울진공작전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뒷일을 군사장 허위에 위임하는 한편 의병을 중지하라는 통문을 발송하였다. 이로써 서울진공작전은 중지되었으며 각각의 의병부대는 본래의 활동 근거지로 되돌아갔다.
서울진공작전은 서울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점령한 후 외교적 담판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국주재 구미 열강의 외교적 지원을 기대하였다. 또한 이들은 일제의 한국 강제 병합에 협조한 친일 세력들을 처단하고 의병 중에서 인물을 골라 정부를 조직하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서울진공작전은 일제 통감부의 타격, 일제와 맺은 조약파기, 친일 정부의 축출, 의병 주도의 신정부 조직을 목표로 추진되었던 사건이었다.

서울진공작전 뒤 의병의 전열 정비와 허위의 노력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가 해산된 뒤 경기북부지역 의병투쟁도 다소 약화되었지만 경기지역 의진들은 곧바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1908년 중반 이후에는 경기 서북부지역과 임진강 유역의 의병항쟁이 크게 확산되었다. 반면 경기 동남부 지역의 의병투쟁은 이전과 같은 세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서울진공작전이 좌절된 후 군사장 허위는 경기도 임진강 유역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허위는 의병장들과 긴밀히 연락하며 의병부대를 재정비하였다. 그는 민폐를 근절시키는 한편, 세금을 납부하지 말 것과 미곡의 역외 반출을 금지시켰다. 가능한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군수물자의 공급과 비축에 적극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의병의 모집과 군사훈련, 무기와 화약의 구입, 서울의 정세 파악 등 제2차 서울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 1908년 4월 허위는 의병장들의 연명으로 전국 13도 의병의 재거를 요청하는 통문을 발송하였다. 또한 경기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병부대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한강을 이용한 물자수송을 차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증강된 일본 군경의 압도적인 화력을 당할 수 없었고, 결국 제2차 서울진공작전은 계획에만 머무르고 말았다.
한편 허위는 고종의 복위와 외교권의 반환, 통감부의 철폐 등을 명시한 32개 요구서를 통감부에 전달하였다. 32개 요구서에는 위의 내용 외에도 의관제도 복구, 일본인관리 임명 금지, 통신 및 출판의 자유, 일본인 상업행위 제한, 이권침탈금지 등이 들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연합의진이 통감부와 담판을 벌일 때 제시할 요구사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통감부와 담판을 벌일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한 허위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통감부에 전달하는 한편, 그러한 사실을 국내외에 널리 알림으로써 연합의진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천명하려고 하였다. 아울러 허위가 통감부에 제시한 32개의 요구조건은 의병들의 근대적 인식의 전환을 보여준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참여 의병장들의 최후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부친상을 당해 급거 귀향했던 총대장 이인영은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은신해 있다가 1909년 6월 7일 체포되었고 그해 9월 20일 처형되었다. 군사장 허위 역시 재차 서울진공작전을 시도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으나 일제 군경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1908년 6월에 체포되어 그해 10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당했다. 13도창의대진소의 핵심전력을 형성한 민긍호 역시 1908년 2월 27일 일본군에 체포되자, 그의 부하들이 구출작전을 전개하는 도중에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
이강년 의병장은 1908년 7월 2일 충북 청풍군 금수산에서 전투 중에 체포되어 그해 음력 9월 19일 교수형을 당하였다. 이로써 13도창의대진소의 핵심적인 지도부는 1908년부터 1909년 사이에 항일투쟁을 전개하거나 암중모색하다가 모두 순국하였다.

서울진공작전의 의의

이들이 시도한 전국적인 연합의진과 서울진공작전은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13도창의대진소는 최초로 편성된 전국적인 연합의병부대였다. 당시 전국 각지의 의병부대는 대체로 독자적인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분산적으로 수행하는 의병항쟁이 일제의 군사력을 분산시킨다는 장점도 없지 않지만 그러한 방법으로는 국권을 수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의병항쟁의 전략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국적인 연합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격투쟁을 전개하는 각지의 의병부대들은 상호 긴밀한 연락체계를 구축하거나 연계하여 일제 군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고, 이후 연합 전선의 구축이나 의진 간의 연계 전략이 자주 시도되어 후기의병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서울진공작전의 목표는 통감부와 외교적 담판하는 한편 주한 외국 공사관의 도움을 얻기 위한 군사 활동이었다. 그래서 13도창의대진소의 지도부는 일본의 불법성을 성토하는 통문을 한국에 주재하는 각국 영사관에 보내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이 일본과 체결한 조약들이 국제법상으로 불법적이라는 점을 강력히 호소하였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하여 일제 침략의 야만성을 고발하고 침략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전개하는 의병들의 활약상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