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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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사 터 보성사 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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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조계사 경내 서편 극락전 앞마당이 보성사 터로 비정된다.
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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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주소 경성부 수송동 44
주소 서울 종로구 수송동 44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위치 고증 「손병희 등 48인 예심종결결정」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보성사의 모습과 관련해서는 "보성중학은 … 지금 태고사(太古寺) 자리가 되겠는데 한옥으로 된 교사였다. 큰 대문이 서향으로 서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맞은 편에 재빛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이 보성사(普成社)로 교과서를 인쇄하던 곳인데 여기서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박았다"는 최승만의 회고가 있다.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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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보성사
관련 인물 이용익(李容翊)/최린(崔麟)/이종일(李鍾一)/이종린(李鍾麟)/윤익선(尹益善)
관련 내용 보성사(普成社)는 대한제국 궁내부 내장원경 등을 역임하며 고종의 측근으로 활약하던 이용익(李容翊)이 1906년 아어(俄語: 러시아어)학교 자리에 보성중학교를 설립하면서 교재출판을 위해 학교 구내에 설치한 인쇄소였다. 보성중학교와 보성사는 이용익 사후 재정난으로 1910년 천도교로 경영권이 넘어가 3·1운동 당시 최린(崔麟)이 보성고등보통학교의 교장을, 이종일(李鍾一)이 보성사 사장을 맡고 있었다. 「손병희 등 48인 예심종결결정」에 따르면, 1919년 2월 27일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2만 1천매를 인쇄하고, 3월 1일 당일 천도교월보사 주필 이종린(李鍾麟)의 주관 하에 독립선언에 호응하여 궐기할 것을 촉구한 『조선독립신문』 제1호(발행인 尹益善)를 찍어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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